“ 변화 ”
– 으레 언어에는 긍정과 부정, 두 가지 상반된 상황에서 모두 쓰이는 단어가 있다.
그 중 하나가 ‘변하다’ 이다.
– 속성이나 상태 따위가 이전과 다르게 됨을 일컫는 말인 만큼,
어떤 부정적 요소가 없어지거나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, 반대로 긍정적 요소가 없어지거나 부정적으로 바뀐 것도 모두 ‘변한 것’ 이기 때문이다.
– 세상 사람들이 “사람은 절대 안 변해”, “야, 걔 잘되더니 변했어” 라는 상반된 의미의 말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곤 하는 것이 이의 반증이 될 테다.
– 하지만 나는 내 신념에 따라, 위 두 가지 말을 전혀 쓰지 않는다.
이제 하나씩 그 이유를 이야기 해보려 한다.
“ 사람은 절대 안 변해 ”
– 글쎄. 좀 더 정확한 표현은, ‘변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변하며, 그대로인 사람은 계속 그대로’ 인 것 같다.
다만, 변하는 것이 현 상태 그대로인 것보다 훨씬 어려워서 주변에 잘 보이지 않을 뿐.
– 필자는 옛날 얘기를 하는 순간이 올 때, 20대 초반 시절의 나를 ‘금수’라고 부른다. ‘동물’을 넘어 ‘짐승’이란 말로도 부족하기 때문이다. 인간이 덜 된 시절이었다.
(그 시절 나를 견뎌준 주변인과, 그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.)
– 그때의 나는 과하게 직설적이었으며, 수요가 없어도 내 기준만의 친절을 행했고,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만 판단했다.
뭐 EEESSSTTTJJJ 정도 였달까.
그래서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양극단에 있었고, 오만하게도 이걸 자랑스러우면 자랑스러워 했지 바뀔 생각은 없었다.
– 하지만, ‘서로 상관없는 상황인데 비슷한 일이 세 번 이상 반복된다면, 무조건 나에게도 원인이 있다’ 고 생각하며 살았다.
일련의 사건을 지나며, 이건 문제가 있으니 나를 고쳐야겠다고 결심했고, 내 가치관 그리고 말과 행동에 대해 깊게 생각하며 노력했다.
여전히 멀었지만, 지금은 그나마 반인반수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.
– 물론, 처음엔 어려웠다.
‘변화하자’는 결심은, 기본적으로 현 상태의 나에 대한 ‘부정’이 선행되어야 한다.
나를 거부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인간의 습성으로 인해 쉽지 않다, 내 잘못이 적어 보일수록 더욱.
–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잘못의 크기를 재단하지 않기 시작했다.
그것조차 내 기준일 수 있지 않은가?
그리고 무엇보다, 나를 바꾸는 것 조차 힘든데 상대방을 바꾸는 것은 오죽할까.
그렇다면 내가 1이라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, 그 1을 바꿔나가는데 집중하면 되지 않을까?
나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.
– 이런 과정을 거치며 변했고, 지금도 나는 항상 변하고 있다.
그럼에도, 앞서 언급했듯 여전히 인간이 덜 됐다. 부단히 노력해야겠지.
다시 해본 MBTI도 바뀐걸 보니, 나를 바꾼다는 것에 있어 택한 이 방식이 아직은 맞는 것 같다.
– 우연히 ‘30대는 20대의 실수를 고쳐나가는 시기라 너무 좋다’는 샤이니 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.
맞다. 이 순간이 있어 나를 고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다.
– 한 가지 예상치 못했던 부가적 효과도 있다.
언행과 성품을 바꾸려 노력하다 보니, 멘탈 체력, 신체, 주변 사람, 살아가는 모습 등 주변 모든 것이 바뀌었다.
이는 곧 내 삶의 일정부분을 내가 디자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? 삶은 정말 말 그대로 ‘만들어 가는’ 거였다.
사람은 변한다.
– 혹시 ‘뭐래 내 주변에 변하는 애들은 본적이 없는 걸’ 이라는 생각이 든다면, 한번 생각해보자.
언어에는 중력이 있고, 그 중력은 비슷한 사람을 끌어당긴다.
변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변하며, 그대로인 사람은 계속 그대로이다.
지금 이 순간도 그 사람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,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.
– 그러네,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은 변하지 않는게 맞다.
아마 당신도, 나도, 계속 이렇게 살지 않을까? 평생.